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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이야기-다시찾은 부르게(2)

과천가이 2010. 7. 13. 15:45

 점심을 가지고 간 빵과 햄 등으로 간단히 먹고 성모교회를 돌아 멤링 미술관(memling museum)을 지나 구세주 대성당(Sint Salvatorskathedraal-영어명 Holy Savior Cathedral)으로 향했다. 구세주대성당은 10세기경에 세워진 이 도시의 교구 교회로 맹폭격의 파괴 시절에도 크게 파손되지 않고 남은 몇 안되는 건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18세기 프랑스 점령기에 점령자들은 브루게의 주교들을 내쫓고 자신들의 주거지로 삼았다. 1830년 벨기에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1834년에 다시 성당의 지위를 회복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39년 성당 지붕이 붕괴되어 영국의 건축가 Robert Chantrell가 신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었으며 그 높이는 100m에 달한다. 구세주 대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부분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구세주 대성당의 모습을 올려본다.

 

   

 

 다시 한 바퀴를 돌다시피하여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 뷔르흐(Burg) 광장에 갔다. 뷔르흐 광장을 둘러싸고 구자유브루게관 르네상스의 방과 고문서관이 있는 건물, 시청사(Stadhuis) 건물, 그리고 성혈 예배당(Heilig Bloedbasiliek, -영어명 The Basilica of the Holy Blood) 등이 있다. 시청사는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물로 1376~142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브루게가 12~15세기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음을 생각하면 그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청사 건물에 들어가면 시의 발달 과정 등의 전시물등을 볼 수 있다. 구자유브루게관관 시청사 건물의 모습을 올려본다.

 

   

 

광장의 한쪽 켠에 있는 성혈 예배당은 1147년 제2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플랑드르의 백작(Count of Flanders)인 Thierry of Alsace가 1150년 4월 7일 브루게로 돌아오면서 가지고 온 '예수의 성혈'을 모신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의 이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성혈의 유물'은 상층에 있다. 상층 입구의 오른쪽에 있는 성혈의 유물은 참배객들이 2유로의 기부금을 내고 참배할 수 있다. 성혈 예배당의 모습과 성혈을 참배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려본다, 

 

   

 

부르게를 둘러보고 오후 2시경에 일단 Zeebrugge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 가는 길에 플랑드르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의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는 부르게에서 약 12km떨어져 있는 Lissewege(http://www.lissewege.be/)를 들르기 위해서이다. LISSE-WEGE라는 이름은 원래 켈트족의 지도자의 이름인 LISO와 집을 뜻하는 켈트어인 WEGA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12세기 초에 리소웨가 영주가 해자를 두른 요새를 축성하면서 이 마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용한 마을의 뒷골목을 한번 일단 올려본다.

 

   

 

기독교 국가인 벨기에의 마을에 역시 항상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교회이다.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고딕양식의 성모교회(The Chirch of Our Lady)는 1250~1275년 사이에 지어진 교회로 크게 두 시기(1225~1250년, 1250~1275년)로 나뉘어 건축되었다고 한다. 첫 시기인 1225~1250년 사이에는 사진의 반원형 본당이 지어졌고, 1250~1275년에는 양쪽 회랑과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49.5m로 등대로도 이용되었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는 1895년에 복구되었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내부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교회 앞쪽의 자그마한 마켓 광장에는 Willem van Saeftinghe 동상이 서있다. 이 사람은 Lissewege의 가장 유명한 거주자라고 한다. 안트베르펜 북쪽의 Saeftinghe에서 태어난 Willem은 프랑스가 플랑드르 지방을 복속시키는데 대하여 저항한 1302년의 6월 11일 Kortrijk에서 벌어진 황금박차 전투(the Battle of the Golden Spurs)를 통해 아주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전투에서 Willem은 40명 이상의 프랑스 기사를 포함하여 프랑스 군대의 지도자인 Robert d'Artois를 죽여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물론 이 때는 플랑드르는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많은 황금 박차를 노획하였다고 한다. 성모교회의 모습과 Willem van Saeftinghe의 동상을 올려본다.

 

   

 

교회 뒷쪽으로 걸어가면 Bezoekerscentrum(영어명 - Visitor center)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역사를 볼 수 있다. 특히 이 비자터 센터 앞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 조형물은 Piet Wittevrongel이 만든 '공존(Coexist)'이라는 제목의 조형물로 각 종교를 상징하는 7가지의 아이콘이 담겨있으면서 조화로운 공존을 알리고 있다. 맨 왼쪽의 이슬람의 상징부터 맨 오른쪽의 기독교의 상징의 조화...종교로 인한 갈등을 조화와 공존으로 풀어나가자는 의미의 조형물이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을 해서 인지 마을 전체가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마을 중앙에 자그마한 운하도 흐르고, 적당한 수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었다. 현대적인 것보다는 오래된 중세의 모습을 탐닉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점수를 받지는 못하지만 과거와 현대가 적당하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방문이다. 잘 단장된 마을의 모습을 올려본다.

 

   

 

브루게 시의 공식 사이트(http://www.brugge.be/)에서 볼거리 top 10 중의 하나로 소개한 Lissewege의 관광을 일단 접고 브루게의 해안 지역인 Zeebrugge의 숙소로 향했다. 대표적 저가 자동차 호텔인 Formule 1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저가 자동차 호텔 시설인 이곳은 숙박비는 비교적 저렴하게 1박에 룸당 40유로(조식 물포함, 조식 포함시 별도 추가 비용 있음)이다. 3명까지 잘 수 있다. 단, 이 호텔의 경우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 사용이었다. 물론 한 명씩 들어가서 일을 볼 수 있고 갯수도 그럭저럭 충분하여 큰 불편을 느끼지는 못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닷가의 모습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Lissewege레 가서 호가든 맥주 한잔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11시가 되어야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