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의 세째날인 2010년 6월 1일은 골웨이의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북쪽으로 약 78km 떨어진 곳에 있는 킬레모어 수도원(Kylemore Abbey)과 그 주변을 돌아보고,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일단 킬레모어 수도원의 아름다운 모습과 가는 길에 펼쳐진 구름을 등에 지고 있는 평화로운 야산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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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레모어 수도원은 골웨이 카운티(Co. Galway)의 ) 지역의 호숫가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자동차 여행을 한다는 것은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 보는 묘미일 것이다. 킬레모어 가는 길에 너무나 한적한 곳이기에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보자고 의기 투합하여 차를 꺽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다 그저 몇 가구가 산등성이에 있을 따름이다. 그냥 한번 마을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돌로 만든 다리가 있어 풍경이 좋다라고 생각하고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낯익은 영화 배우의 사진이 있었다. 바로 그 다리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그 영화 배우는 바로 존 웨인이었고, 사진 속의 장면은 1952년도 영화 'The Quiet Man'에서 남자 주인공인 존 웨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혹시 영화에 대해 궁금하시면 다음을 클릭하시기를...(http://100.naver.com/100.nhn?docid=795623). 존 웨인은 이 다리에 혼자 걸터 앉아 있었지만 우리는 부부가 나란히 걸터 앉아 보았다. 다리 건너 산 등성이의 마을의 사진도 함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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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들른 마을을 빠져 나와 계속 킬레모어를 향했다. 킬레모어 가는 길은 코네마라 국립 공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경치가 너무 좋아 한 눈 팔다가는 호수에 물 먹으로 차를 탄패로 들어갈 수 있으니 운전 조심하기를....킬레모어 가는 길의 날씨는 맑았가, 흐렸다, 비왔다, 다시 맑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의 구름의 양을 보면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얼굴과 다리가 까만 양들이 길가의 풀밭에서 얌전히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양이 방목 되고 있어서 등에 주인을 표시한 색깔이 여러 색으로 물을 들인 사람의 머리칼 같았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새끼 양의 모습을 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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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킬레모어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킬레모어에 가기 전에 미리 웹에서 공부하는 것도 역시 좋을 듯(http://kylemoreabbeytourism.ie/). 킬레모어 수도원은 원래 부터 수도원은 아니었다. 킬레모어의 역사를 4기로 나누어 본다면 제 1기(1867~1903년), 제 2기(1903~1914년), 제 3기(1914~1920년), 제 4기(1920~현재)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맨체스터 출신의 Michell Henry가 그의 부인 Margaret와 9명의 자년들을 위해 거금을 들여 1867~1871년 동안 이 성을 완공시켰다. 이들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빛나는 이 지역으로 1850년에 신혼 여행을 오게되었는데 코네마라 지역에 너무 반하여 여기에 성을 지은 것이다. 1874년에 슬프게도 마가렛 여사가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으며, 그 이후로 헨리는 재혼하지 않고 그이 가족들과 190년 이 집을 내놓기까지 즐겁게 살았다고 한다. 제 2기는 맨체스터의 공작 부부가 이 집을 구입하였다. 26살의 공작은 바람둥이에 도박광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집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지만 정원이나 농장, 소작지 등은 거의 관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집은 모기지 담보때문에 1914년 런던의 은행가이자 부동산 투기자인 Ernest Fawke의 손으로 넘어가 제 3기를 맞게 된다. Ernest Fawke는 킬레모어를 거의 방문하지 않았으며, 관리인의 손에 맡겨졌다고 한다. 제 4기는 1920년에 베네딕트회 소속의 수녀들이 인수한 시점부터이다. 베네딕트회(Benedictine Community)의 수녀들은 원래 벨기에의 이프러(Ypres)로 부터 피난나왔다. 이프러는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들이 최초로 연합군에 염소 가스 공격을 한 곳이기도 하다. 1차 세계 대전 발발 초기에 독일군의 공격에 의해 수도원과 학교가 파괴되자 이 성을 구입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킬레모어는 성에서 수도원으로 바뀌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녀들은 1925년에 이곳에 기숙학교를 개교했는데, 안타깝게도우리가 방문한 바로 그 시점인 2010년 6월에 문을 닫았다. 산 밑에 자리잡고 있는 킬레모어 수도원과 수도원 발 아래 펼쳐져 있는 Pollacappul 호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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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글자가 PAX라는 글자일 것이다. PAX는 Peace를 뜻하며, Pax는 이 베네딕트회의 모토라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Inner Hall을 볼 수 있다. 참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면 헨리 가족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겔러리 홀(Gallery Hall)로 연결된다. 이 방에는 1706년 스페인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영국과 네델란드 연합군과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벨기에의 라미예르(Ramillies)에서 아일랜드 여단이 노획한 라미예를 깃발이 벽면에 걸려 있다. 1959년 이 수도원은 화재가 일어나는데 이 화재에도 안전하게 이 깃발은 살아남았다. 현재의 응접실(The Drawing Room)은 1993년에 복구된 것이다. 응접실은 헨리 가족들이 모여서 즐겁게 담소 나눈던 곳이었으며, 나중에 수도원이 되었을 때는 독서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 바로 뒤에 걸려 있는 마가렛 헨리 여사의 초상화를 보면서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를....Inner Hall과 The Drawing Room의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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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The Community (or middle) Room'이다. 이 방은 원래는 두 개의 방(a Breakfast Room, a Morning Room)이었다고 한다. 이 방에는 수녀원장님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 옆으로는 식당(Dining Room)이 이어 진다. 이 식당은 헨리 가족들의 식당 이었으며, 뒤쪽으로 부엌이나 접시 등을 보관하는 방이 있다. 식당을 지나면 Rear Hall이 이어지며, 비록 올라갈 수는 없지만 이 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33개의 침실과 dressing room이 있다고 한다. 또한 학교 음악실과 예배당으로 쓰이는 방들이 있다. 'The Community Room'과 'Dining Room'의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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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레모어 수도원 건물에서 나와 호수를 끼고 신 고딕 양식의 교회인 Neo Gothic Church가 있다. 이 고딕 교회는 Mitchell Henry가 이 성이 완공된지 4년 만에 죽은 자기 부인 마가렛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교회로 1877년에 짓기 시작하여 1881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교회는 축소판 대성당(cathedral in miniature)으로 교회 내부는 웨스트민스터의 St Stephen 예배당을 본 딴 것이라고 한다. 교회 내부의 기둥의 여러 가지 대리석은 아일랜드의 여러 다른 지방으로부터 온것이라고 한다. 녹색 대리석은 Connemara (Connaught)지방에서, 붉은 대리석은 Cork (Munster) 지방에서, 검은 대리석은 Kilkenny (Leinster) 지방에서, 회색 대리석은 북부 아일랜드의 Ulster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91년 수도원에서 유럽 지역 발전 기금, 은행 대부, 기부 등의 후원으로 복구를 시작하여 1995년에 다시 문을 열은 상태의 모습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헨리 부부의 묘지(Mausoleum)가 나온다. 마가렛 헨리는 1874년 이집트에 가족 여행 도중에 이질에 걸려 병 발발 16일만에 비극적으로 4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갔다. 죽었다. 그녀의 유해는 킬레모어로 운반되어 이곳에 묻혔으며, 그녀의 남편인 Mitchell Henry도 1910년에 저 세상을 간 다음에 그의 재가 그의 사랑하는 부인 마가렛 옆에 나란히 묻혀졌다. 오늘날의 킬레모어를 있게 한 두 사람을 참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처치의 바깥과 안쪽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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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chell Henry는 원래 의사였다. 그러나 그를 호칭하는 용어는 Doctor, Industry Tycoon, Politician, Pioneer 등이다. 다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킬레모어의 성과 가든을 보면서 나는 그는 발명가의 대열에 넣는 것도 괜찮으리라 싶다. 물론 그가 직접 만든 기계는 없지만 직접 수력 발전을 하여 전기를 생산하여 사용했다거나 가든의 난방 장치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등을 보면 실용 신안 특허 몇 개는 받지 않았을까? 여하튼 킬레모어 수도원과 고딕 처치를 본 후에 킬레모어 수도원에서 약 1.6kn 떨어진 '빅토리아 풍의 담으로 둘러싸인 가든(Victorian Walled Garden)'을 보러 갔다. 이 가든은 킬레모어 성을 지을 때 동시에 조성된 것이다. 가든에 가는 방법은 셔틀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과 걸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갈 때는 셔틀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걸어오는 방법을 택했다. 셔틀 버스를 타거나 혹은 걸을 경우 Tea House 앞에 도달한다. 셔틀 버스의 모습과 Tea House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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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버스의 안내 방송 중에 런던의 큐 가든과 비교하라는 멘트가 들린다. 큐 가든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얼마나, 어떻게 비교가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적어도 큐 가든은 국가적 차원이고, 이곳 가든은 Mitchell Henry가 개인적 차원에서 완성한 것이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다. 여하튼 벽돌담 가든(Walled Garden)은 벽돌담 사이의 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원래의 게이트는 이곳이 아니고 가든의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가든에 들어가면 original gate 팻말이 있음). 문을 통해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정원의 모습을 갖춘 the Formal Flower Garden을 만날 수 있다. 이 플라워 가든은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잔디 사이의 화단에 1년생 꽃들을 심는다고 한다. 입구와 the Formal Flower Garden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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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al Flower Garden을 끼고 오른쪽으로 가면 원래 이 가든을 출입하던 문이 있다. 헨리는 이 문을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를 지나 약간 오르막으로 올라가면 포도나무 온실(Glasshouses & Vinery)를 볼 수 있다. 한 때 이 가든에는 21개의 온실이 있었지만 현재는 2개밖에 복구가 안되어 있다. 21개의 온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국적인 과일이나 식물들, 특히 바나나와 같은 이국적인 과일들을 심었다고 한다. 이들 온실의 난방을 위하여 3개의 보일러가 가동되었으며, 총 길이 1538m에 달하는 파이프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보일러 시스템은 헨리가 고안한 것으로 석회가마(Lime Kiln)를 이용한 것이었다. 온실을 지나면 윗쪽의 the Formal Flower Garden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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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빅토리아 온실 중 단 2개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이처럼 복구가 안된 상태이다. 복구가 안된 온실을 보면 앞에서 설명했듯이 석화 가마에서달구어진 물은 지름 4인치의 철관을 통해 흘러가는데 이 관들은 온실의 땅 밑에 지나가고 있으므로 온실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그 당시의 온실용 파이프가 드러나 있는 아래 사진을 보시면 대강 알 것이다. 이 정원의 윗쪽에는 가드닝 하느데 필요한 연장을 두던 창고(Tool Shed)가 있으며, 창고를 왼편으로 돌아가면 가드닝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간이 숙소(Bothy)가 있다. 간이 숙소의 찻잔을 보면 6명 정도의 일꾼이 일을 마치고 목욕을 한 후에 방금 차를 마신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복구 중인 빅토리아 시대의 온실과 연장 창고와 간이 숙소가 있는 건물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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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숙소 옆에는 수석 정원사(Head Gardener)의 집(Cottage)이 있다. 수석 정원사가 Bothy에 살고 있는 정원사들을 데리고 이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했을 것이다. 이 집에는 응접실, 식당, 세탁실 등이 있으며, 당시에 신었던 작업화 한 켤레가 입구에 놓여 있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거실에서 그가 정원사들이 일하는 모습이나 the Formal Flower Garden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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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정원사의 집 아래쪽으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나 있는 통로를 따라 가면 다양한 특징에 따라 정원을 꾸며 놓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산의 계곡물이 흐르고 손 대지 않은 수풀(Mountain Stream & Informal Woodland)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고, 식용 식물 가든(Kitchen Garden)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조선 상추는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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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암석 지대에 살고 있는 식물 상을 가꾸는 암석 정원(The Rockery), Herb 식물을 심어 놓은 허브 가든(Herb Garden)을 찾아 볼 수 있다. 허브의 은은한 향기를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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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닦여진 길 옆으로 심어진 초본 식물의 활짝 핀 꽃을 만끽할 수 있는 다년초 화단(The Herbaceous Border)도 있고, 양치 식물을 그늘진 수풀의 개울이 흐르는 곳 가까이에 심어 놓은 양치식물길(Fern Walk and Stream)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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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초 화단을 지나 양치식물을 본 다음, 남쪽에는 관목들을 볼 수 있는 남쪽 관목 화단(Southern Shrub Border)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떨기나무들이 나름대로 꽃을 피운 모습이 작지만 아름다웠다. 한 바퀴를 가볍게 돌고 다시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왔다. 아쉬움에 formal garden의 전체 모습이 들어오도록 한 컷 더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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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Tea House쪽으로 나와 간단하게 그야말로 Tea를 한 잔 마시고 우리는 이번에 1.6km에 달하는 길을 산책해보기로 했다. 15분에 한 번씩 다니는 셔틀 버스를 타고 약 4분 정도 걸리는 길을 숲의 정령들과 대화하면서 여유롭게 슬슬 걸어서 20분 만에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진달래과 식물들이 꽃을 피운 모습과 성모 마리아상을 모셔놓고 뭔가의 기도를 올리는 작은 동굴(Grotto)의 모습도 있었다. 큐가든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일 개인이 다양한 식물 상을 만들려고 했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도록 한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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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골웨이 지방의 2박 3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더블린에서 우리가 묵은 Ibis Hotel의 모습과 호텔 로비에서 아일랜드 하면 생각나는 기네스 맥주를 한 잔 마셔 보는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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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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