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에는 Gent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 연합의 정치의 중심지인 브뤼셀(Brussels)로 이동했다. 브뤼셀은 인구 약 110만명의 나름대로 큰 도시 지역으로 EU의 많은 국제기구와 NATO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것들을 나열해 보면 오줌싸개 동상, 홍합 요리, 와플, 그리고 브뤼셀에서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광장인 그랑 플라스(Grand Place)를 빼 놓을 수 없다. 우리는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가 PARKING GD PLACE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브뤼셀 거리를 어슬렁 거렸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제일 먼저 눈에 보인 높은 건물인 쌩 미셀(Saint Michel) 성당에 들렀다. 쌩 미셀 성당은 파리의 노틀담 성당과 유사하게 생긴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이 성당은 원래 1047년에 Leuven의 공작인 Lambert 2세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대천사 Michel과 순교자 Gudula 성인을 모신 성당이다. 이루 1226년~1276년 사이에 증개축 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왕가의 결혼식이나 국가적인 장례 등의 의식이 행해진다고 한다. 성당의 외부와 내부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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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셸 대성당은 마침 주일 미사를 진행 중이어서 그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성 미셀 대성당 앞에는 나름대로 자그마한 공원이 있으니 쉬어 감이 어떠할까? 기차를 타시는 분들은 중앙역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캐톨릭의 포스를 한번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성 미셸 대성당의 정면의 전체적인 모습과 성당 앞 공원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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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슬슬 그랑 플라스쪽으로 발걸음을 도려서 내려가다 보니 마침 이비스(IBIS) 호텔 앞 Place de l'Espagne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벼룩시장은 언제나 재미 있다. 마침 계란 껍질에 그림을 그리는 곳을 찾아 계란 그림 기념품 한 개를 사고 직접 그림을 그린 작가(?) 분과 기념 쵤영을 했다. 벼룩 시장의 모습과 계란 그림 가게 작가 사장님과 한 컷한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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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시장에서의 물건 고르기 시합에 동참하지 않은 나는 길거리를 일단 돌아다녀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오전 10시 30분 경)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약간 한산 했다. 광장 앞 거리와 Rue des Bouchers의 레스토랑 거리를 쏘다녔다. 레스토랑 거리는 온통 홍합 요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전날 브루게에서 홍합 요리를 먹은 탓에 그냥 skip하고 그곳의 풍경만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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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시 우리 일행은 모두 모인 후 그랑 플라스로 이동하여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랑 플라스는 네델란드 말로 Grote Markt(큰 시장)라고 하며, 브뤼셀의 가장 중앙부에 위치한 광장으로 동서로 110m, 남북으로 70m 정도 되는 광장이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브뤼셀에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되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 광장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을 정도이다. 이 광장은 기원은 사실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세기에 이곳 주변에 요새가 건설되었고, 11세기에 고기 가게, 빵 가게, 옷가게가 indoor market으로 개장하였다고 한다. 이 광장의 향상은 14세기부터라고 보면 된다. 이 광장의 남쪽에는 1401년~1455년 사이에 지어진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다. 시청사에는 96m 정도의 높은 탑이 있는데, 그 탑의 꼭대기에는 3m 높이의 악마를 죽이고 있는 브뤼셀의 수호 성인인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있다. 아래 사진에서 그 탑을 다 보여주지 못하기는 하지만 시청사의 모습을 올려본다. 아래의 동영상에서 그 탑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광장 서쪽의 시청사 건물 옆에는 여우의 관-주머니의 관-스페인 왕의 관이 있는 건물이 있다. 이들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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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1536년 사이에 브라반트(Brabant) 공작은 시청 건너편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기존의 옷 가게와 빵가게가 있던 자리에 오늘날 왕의 집(Maison du Roi-영어로는 King's House)로 알려진 건물을 지었다. 물론 그곳에 왕이 산 적은 없지만...물론 여전히 네델란드어로는 이전에 빵가게가 있던 자리라서 Broodhuis(Breadhouse)라고 부른다고 한다. 현재는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광장의 한쪽 가장 자리에 부유한 상인들이 길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1695년 8월 13일 7만명의 프랑스 군대가 그랑 플라스 광장의 건물을 대포와 박격포로 초토화시켰다. 그 중 유일하게 돌로된 고딕 양식의 건물인 시청사만 집중 포화를 맞았음에도 건재하고 나머지 건물은 박살이 났다고 한다.이 광장은 그 후 4년 동안 길드 구성원들에 의해 새로 지어졌으며 그래서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조합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왕의 집과 길드하우스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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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플라스에 들어드면서 왼편으로 브라반트 공작( the Maison des Ducs de Brabant -영어명 the House of the Dukes of Brabant)의 집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실제로는 7개의 건물이 모여서 생긴 건물이다. 이 건물은 1698년 건축가 Guillame de Bruyn이 설계한 것으로 , 7개 건축물은 La Bourse (The Stock Exchange), La Colline (The Hill), Le Pot d'Etain (The Tin Pot), Le Moulin à Vent (The Windmill), La Fortune (The Fortune), L'Ermitage (The Hermitage) L'Ecrevisse (The Crayfish) and La Renommé (The Fame)이다. 이 건물이 브라반트 공작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건물 1층 창문아래 브라반트 공작의 흉상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반트 공작관 옆으로는 맥주 박물관(Maison des Brasseurs )이 있다. 맥주박물관은 원래 맥주 길드가 세운 것이다. 14세기에 결성된 맥주 조합이 16세기말에 이 건물을 샀으며, 1695년 프랑스 군대의 폭격에 의해 파괴된 것을 이후에 다시 재건축하였으며, 1901년 꼭대기에 Charles of Lorraine을 덧붙였다고 한다. 브라반트 공작관과 맥주박물관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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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별의별 사람들이 있는데 선글라스를 낀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버는 아저씨가 있어 그 사진을 찍어본다. 이 광장에서는 8월에 광장에 수백만 송이의 꽃으로 장식하는 꽃 카펫(floral carpet)을 만든다. 이 꽃 카펫은 1971년도부터 시작되었는데 1986년까지는 부정기적으로 열리다가 1986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즉 짝수년에 개최된다고 한다. 개최일은 법정 공휴일인 성모승천일(매년 8월15일)이 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전시하며, 이를 만들기 위해 약 1천명의 자원봉사자가 나흘에 걸쳐 작업을 하지만 문양 검토 등 준비과정은 1년 전에 시작된다고 한다. 매년 이 때쯤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8월 1일 이곳에 왔기 때문에 2010년 8월 13(금)~15(일)에 개최된 꽃 카펫을 직접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대신 2006년도 장면을 사진으로 올려본다.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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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플라스의 전체적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보았다.
뭐니뭐니해도 브뤼셀의 상징은 아마도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이 아닐까한다. 이 동상은 1618(?1619)년에 제롬 듀케뉴아(Jerome Duquesnoy)가 만든 높이 약 60㎝의 청동상이다. 이 동상이 세워지게 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142년늬 Leuven의 공작 Godfrey III 와 관련된 것으로 2살짜리 공작의 군대가 그들의 군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를 바구니에 넣어 나무에 걸어놓았는데 거기서 상대편인 Berthouts 군대에에게 오줌을 갈겨 결국 승리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전설이다. 또 다른 것은 14세기에 브뤼셀이 외세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브뤼셀을 공격하는 군인들이 성벽을 폭파시키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했을 때 Julianske라는 꼬마 스파이가 적진에 들어가 폭발물의 퓨즈에 오줌을 갈겨 도시를 구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로는 이 도시를 가족과 함께 방문한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아들을 잃어버려 이 동상을 세웠고 결국 아들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여하튼 전설이야 어떻든지 간에 이 오줌싸개 동상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옷들이 있으며, 가끔은 옷을 입히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이 청동상은 가끔 1745년 영국에세, 그리고 그 2년 후에는 프랑스에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오줌싸개 동상이 광장의 남쪽에 있는데 이의 반대편인 광장 북쪽의 레스토랑 거리에는 오줌 누는 소녀상(Jeanneke Pis)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1985년 Denis-Adrien Debouvrie라는 사람이 만들어 1987년에 세웠다. 이 소녀의 동상은 약 50cm정도의 높이로 있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철창 속에 가두어져 있어 씁씁함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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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개 동상 옆에는 브뤼셀의 유명한 명물 중의 하나인 와플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각자 입맛대로 골라 와플을 하나씩 사먹었다. 나는 딸기와 크림을 얹힌 와플을 머었다. 브뤼셀을 떠나기 전 오줌 누는 소녀 상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왕립 모네 극장(http://www.lamonnaie.be/)앞을 가보았다. 왕립 모네 극장은 음악회, 오페라, 무용 등의 공연을 하는 곳이다. 와플 가게와 왕립 모네 극장의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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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의 헤이그, 벨기에의 브루게를 둘러보고 겐트에서 1박을 한 후에 브뤼셀을 둘러보고 우리는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 파리를 향해서 가는 도중에 우리는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와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한 판 붙은 브뤼셀 근교의 워털루를 지나갔다. 영국의 워털루 역도 이 지명에서 나온 것이리라. 프랑스 파리에서의 숙소가 샤를리 드골 공항에 있어서 우리는 그곳에 가기 전에 공항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난 번에 들렀던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와즈를 방문하기로 했다. 오베르 쉬르 와즈 이야기는 지난 번 방문 글을 참조하시면 된다(http://blog.daum.net/soriini/96). 고흐가 거닐었던 밀밭이 지난 번에는 추수 전이었는데 이미 추수가 이루어져서 그 장면을 올려보고, 고흐 형제의 무덤에 해바라기가 있길래 그 장면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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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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