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셴에서 로맨틱 가도(Romantiche Strasse-이 이름은 로마에 이르는 길의 의미임)를 달려 도착한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의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아우구스부르크를 둘러보고 다시 로맨틱 가도를 달려 뉘른베르크(Nurnberg)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하루밤 머무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아우구스부르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관련이 있다. 이 도시는 기원전 15년에 로마군단의 기지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도시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2명의 양자인 드루스스(Drusus) 티베리우스(Tiberius)가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그 역사가 꽤나 깊은 도시로 독일에서는 2번째로 오래된 도시이다(첫번째는 트리아-Trier). 또한 아우구스부르크하면 마틴 루터로 상징되는 종교 개혁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바에에른 주에 속하는 아우구스부르크는 인구가 약 27만여명(2009년 12월 31일 현재)의 도시로 최근 공업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아우구스부르크의 중심 광장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동상과 함께 있는 분수가 있고, 그와 마주한 시청사(Augsburger Rathaus)가 있다. 이 시청사는 건축가 엘리아스 홀(Elias Holl)의 주도로 지어졌으며, 1615년 8월 25일 주춧돌을 놓은 후 건물 외관은 1620년 3월에 내부 장식은 1624년에 완공된 알프스 북쪽에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건축사적으로는 세워질 당시에는 세계 최초의 6층이상의 건물인 7층 건물이라는 점이다. 동상과 시청사의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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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앞 광장에는 여행안내소가 있으니 이곳에 들러 여러 정보를 얻는 것도 아우구스부르크를 둘러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청사 옆으로는 70m 높이의 탑이 눈에 띈다. 이 탑의 이름은 페를라흐트룸(Perlachturm)이다. 이 페를라흐 탑은 10세기 경에 원래 시계탑으로 세워진 것인데 오늘날에는 도시 중심의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있다. Perlachturm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럴듯한 정설로 이 탑의 이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Per," "lach", "turm," 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마지막 turm이 탑(tower)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처음 두 부분은 아마도 중세 시대의 곰과 관련된 쑈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Per 는 곰(bear )을, lach 는 쑈(show, or fair)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하튼 페르라흐트룸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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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시청 앞 광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려본다.
시청사 앞에서 남쪽 방향의 막시밀리안 거리(Maximilianstrasse)쪽을 바라보았다. 지상 전철의 선들이 나름대로 질서있게 퍼져 있었고, 전철이 다니는 철로 옆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청사에서 바라본 막시밀리안 거리 풍경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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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쪽으로는 대성당(Dom)과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짜르트의 아버지가 레오폴트 모짜르트(Leopold Mozart)가 1731년에 태어난 집인 모짜르트 하우스가 있다. 걸어가는 길에 빗발이 흩날려 우리는 일단 대성당까지만 둘러보도록 하였다. 대성당은 아우구스부르크 주교관구에 속하는 성당으로 이 성당의 역사는 8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길이 113m, 너비 40m, 그리고 첨탑의 높이가 62m에 달하는 성당이다. 서쪽 성가대석 아래의 지하실은 10세기경 울리히 주교(Bishop Ulrich)가 세웠다고 한다. 이 성당의 창문에는 12세기 중엽에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Elder)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로 처리한 선지자 요나, 다니엘, 호세아, 모세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은 1863년에 신고딕 양식으로 개축한 모습이다. 대성당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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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은 성모마리아 대성당(Dom Unserer Lieben Frau)이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으며, 1537~1548년에 걸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성당 안의 많은 조각상이 파괴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성당앞의 광장에는 10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는 성 요한 교회(St. John’s Church)의 기초 부분이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로마시대때의 아우구스부르크의 벽(Roman wall)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 터와 로마 시대 유물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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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시청사쪽을 향했다. 시청사를 지나 남쪽으로 막시밀리안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벽면에 벽화로 장식을 한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1층의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우리는 걸어나갔다. 차를 주차시킨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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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부르크하면 종교 개혁을 빼놓고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종교개혁의 흔적이 막시밀리안 거리에도 남아있다. 막시밀리안 거리를 따라 시청사에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편으로 꽤나 큰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은 1512~1515년에 걸쳐 아우구스부르크의 대부호 야콥 푸거(Jakob Fugger)가 집 몇 채를 사서 이 집들을 병합하여 만든 건물이다. 종교 개혁과 관련하여 이 건물은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1517년 루터(Martin Luther)의 96개조문으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당시 로마 교황청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교황청과의 불협화음으로 로마 교황청은 1518년 10월 가예타노 추기경(Cardinal Cajetan)이 교황의 대표 역할을 했던 아우구스부르크회의로 마틴 루터를 소환한다. 이 자리에서 루터는 가예타노에게 그는 교회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선포했지만 담대하게 교황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인했다. 바로 소환하여 회의를 했던 장소가 야콥 푸거의 건물이다. 이 건물의 모습과 이 회의를 하였다는 표지가 건물에 붙어 있다. 이들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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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거리에는 분수가 몇 개 있다. 거리를 따라 만날 수 있는 분수 중 헤라클레스 분수(Hercules Fountain)는 1597~1600년에 네델란드의 조각가 아드리안 드 프리스(Adriaen de Vries)의 작품이다. 헤라클레스 분수는 오늘날에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770년 로코코 양식으로 건축된 세츨러 궁전(Schaezler Palace ) 바로 앞에 있다. 마침 결혼식이 열렸는지 이 분수대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즐기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헬라클레스 분수 뒤쪽으로 뾰족한 돔이 있는 건물이 보일 것이다. 이 건물은 아우구스부르크의 기독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인 성 울리히 & 성 아프라 교회(St. Ulrich und St. Afra Abbey)이다.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제국의회(Diet of Augsburg)에서 마틴 루터의 협력자인 멜라히톤(Philipp Melanchthon-지구본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기초한 종교개혁의 기본 교리가 담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Augsburg Confession)이 카를 5세 앞에서 낭독되었다. 그후 루터파제후들은 1536년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에게 반대하며 슈말칼덴동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황제와 슈말칼덴동맹은 1546년 전면전을 벌였다. 최초의 종교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슈말칼덴전쟁에서 카를5세는 승리했고 슈말칼덴동맹은 와해되었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종교개혁에 불을 지핀 루터가 1546년 사망했고, 종교개혁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 왕, 합스부르크가의 가주, 오스트리아/헝가리/네덜란드/나폴리/시칠리아등 그외 수많은 지방의 군주를 겸한 카를5세의 승리로 끝나는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운명은 프랑스의 프랑스와1세, 영국의 헨리8세, 로마교황 클레멘스7세, 투르크의 술탄 술레이만과 싸워 승리했던 카를5세를 마지막 순간에 배반하였다. 루터파 신도였던 부하에게 배신당한 카를5세는 루터파제후들과의 타협을 다시 한번 강요받았고 결국 루터파제후들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1555년에 아우구스부르크의 화의(Peace of Augsburg)가 맺어졌다. 이 화의의 산물이 바로 이 교회이다. 이 교회의 앞쪽은 개신교 교회이고 뒷쪽은 카톨릭교회이다. 이 교회능 성 울리히와 성 아프라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지어졌다고 한다. 또한,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 8일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단, 아우구스부르크 지역에서만 말이다.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의 공휴일은 다른 독일 지역보다 하루가 더 많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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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부르크에서 아직 둘러봐야 될 것들이 몇 군데 더 있기는 하지만(예를 들어 1516년에 가난한 이를 위해 세워진 세계 최초의 복지형 주택인 연립 주택 단지, 모짜르크 하우스 등등..._ 아쉬움을 간직하고 다음 행선지인 뉘른베르크(Nürnberg-영어명 Nuremberg)로 향했다.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 지방에서 뮌헨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현대사에서 뉘른베르크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전당 대회가 치뤄진 곳이고, 전후 전범 재판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에서 우리는 중앙 광장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 제일 먼저 중앙 광장으로 갔다. 중앙 광장에는 높이 19m에 이르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물론 진품은 박물관에..) 팔각형 피라미드 형태의 분수에는 40개의 동상이 장식되어 있다. 멘꼭대기에는 모세와 예언자, 그 밑으로는 신학 복음서 저자와 교회 창시자, 그리고 맨 아래에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있다. 중앙 광장(Hauptmarkt)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Schoner Brunnen)과 성모교회(Frauenkirche)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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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격자 무늬의 쇠창살에 금색의 둥근 고리가 있다. 여행객이나 이제 막 결혼한 신혼 부부가 이 고리를 시계반대방향(왼쪽)으로 3번 돌리면서 소원을 빌고 누구에게도 이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한번 돌려보았다. 소원의 내용은 비밀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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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중앙 광장에는 장이 열리고 있어서 몇몇 가지 먹을 거리를 준비하였다. 물론 가격은 매우 저렴...중앙광장에는 관광용 버스 승차장이 있다. 걷기에 힘든 분은 이 버스를 타시면서 여행하는 것도 좋을 듯..그러나 여행의 참맛은 다리의 힘에 있을터이니 웬만하면 걸어다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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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중앙광장의 동영상을 올려본다.
중앙광장 옆의 구 시청사를 마주보고 아주 오래된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St. Sebaldus Kirche)가 있다. 이 교회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050년 수도사 제발두스가 수도원을 세운 후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하여 1379년에 완성된 교회이다. 수도사 제발두스의 유해는 이 곳에 안치되어 있다. 종교개혁 이후로는 루터파 교회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1690년에 이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된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내 모바일 폰의 음악으로 파헬벨의 캐논을 깔아놓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독일 음악가이다. 인생의 말년을 그는 이곳에서 보내면서 음악적 업적을 쌓았다고 한다. 참고로 파헬벨의 캐논으로 알려진 음악은 《세 대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 라 장조-Kanon und Gigue in D-Dur für drei Violinen und Basso Continuo)》는 이 곡의 전반부이다. 파헬벨의 캐논을 듣고 싶으신 분은 다음을 클릭하시기를(http://www.youtube.com/watch?v=kZJ39w5IZz4)...제발두스 교회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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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내부의 모습과 제발두스의 유해가 안치된 관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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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두스 교회를 둘러보고 뉘른베르크 성(카이저부르크-Kaiserburg-영어명 imperial castle) 성에 올라가는 길에 뉘른베르크가 낳은 독일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뒤러의 동상이 서 있는 이곳은 뒤러 광장이다. 동상 뒤 편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괜히 기댔다가 떨어질 염려가 있으니 주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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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는 길이 5km에 이르는 환상(環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 중 우리는 뉘른베르크 성(카이저부르크 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카이저부르크성은 사암을 이용하여 1050년에 축성되어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황제들이 22년간 머물렀던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성이다. 지금의 모습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카이저부르크 성의 입구를 올려본다. 참고로 이 성 입구의 오른쪽에는 성의 마굿간을 개조한 유스호스텔이 있다. 고성의 마굿간에서 하루 밤 청하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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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부르크 성 내부에는 황제의 방, 기사의 방, 로마네스크 양식의 2층 예배당이 있고, 성 안에는 입구를 쇠창살로 막아 놓기는 했지만 48m 깊의 우물(Tiefer Brunnen-영어명 deep well)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성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은 진벨탑(Sinwellturm-영어명 Sinwell tower)이 아닐까 한다. 성 안의 모습과 진벨탑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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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벨탑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탑 꼭대기에 올라가 뉘른베르크의 풍경을 보는 것이다. 뉘른베르크의 빨간 지붕의 중세 건물을 보는 맛이 있다. 진벨탑에서 바라본 뉘른베르크 성의 모습과 뉘른베르크 시내의 빨간 지붕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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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진벨탑에서 바라본 동영상 두 편을 올려본다.
카이저부르크 성에서 내려와 뒤러의 집에 들렀다. 뒤러는 독일의 국민 화가이다. 유로화가 생기기 전에 독일 마르크 화의 지폐에는 뒤러의 그림으로 도배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미켈란젤로(1475 -1564)가 있다면 독일에는 뒤러(1471~1528)가 있다. 뒤러는 이 집에서 1509년부터 1528년에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다. 뒤러가 남긴 그림의 일부와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주방이나 거실을 당시 그대로 재현해 놓아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뒤러의 집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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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뒤러의 집 근처의 모습의 동영상을 올려본다.
뒤러는 독일 서민들의 그림을 화폭에 많이 담았던 민중화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맥주집 이름에 뒤러가 등장한다. 뒤러의 집 근처의 거리의 풍경과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한적해진 골목길의 모습을 올려본다. 뉘른베르크의 E-tap 호텔로 우리도 슬슬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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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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