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로마 4박 5일 다녀오기

로마 다섯번째 이야기-바티칸 박물관(미술관)

과천가이 2010. 3. 16. 06:59

로마에 온지도 어느덧 3일째이다. 3일째인 오늘의 주요 방문 코스로 박술관을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은 놀랍게도 아주 자그마한 도시국가인 바티칸 시국(http://www.vaticanstate.va)에 자리잡고 있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모이는지라 2시간 정도 줄을 서는 것이 기본이라고 들었는데, 별로 길게 줄을 서지 않았다. 아마 겨울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원래 어딜 가면 오랜 시간을 그곳에 할애(割愛)하는 우리 가족들은 3일째의 대부분을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에서 보냈다. 어제 산 시티 투어 티켓이 24시간 용이라서 아직 24시간 지나지 않았기에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바티칸을 향했다. 전체적인 바티칸 시국의 모형과 바티칸 박물관의 높은 담장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물론 방문하기 전에 미리 공식 웹사이트를 들렀다 가면 금상첨화이다(http://mv.vatican.va).  

   

 

2010년 2월 17일 현재 입장료는 15유로이며, 6~18세는 8유로, 국제학생증 소지자도 8유로이다(우리 가족의 경우 EU 국가인 영국 학생증도 인정 받아 두 딸은 할인 받았음), 우리말로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경우 7유로이다. 입장권의 그림은 라파엘(Raffaello)이 그린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다. 입장권의 앞뒷면을 올려본다.

 

   

 

바티칸 미술관은 16세기에 교황 율리오 2세(Giulio II-영어명 Julius II,1503-1513)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이후 클레멘테 14세(Clemente XIV,1769-1774)와 그의 후임자인 피오 6세(Pio VI, 1775-1799) 때 오늘날 볼 수 있는 것과 갤러리의 모양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으며, 피오-클레멘티노 미술관(Museo Pio Clementino)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후 피오 7세(Pio VII, 1800-1823)를 비롯하여 역대 교황들이 계속 확장해나갔다. 바티칸 박물관 투어는 오디오 가이드를 중심으로 따라 다녔다. 처음 들른 곳은 이집트 미술관(Museo Gregoriano Egiziano)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y XVI)가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파피루스와 미이라.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死子의 書(Book of the Dead)'라는 유명한 유물이 있다. 워낙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서 미라(mummy)들을 강하게 본 탓인 설렁설렁 지타쳤다. 미라 앞에서의 포즈를 취한 우리 아이의 사진을 살짝 올려본다.

 

 

 

이집트 미술관을 나와 일단 건물에 둘러싸인 잔디 광장으로 나왔다. 이곳의 이름은 피냐의 정원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솔방울을 나타낸 1세기 경의 한때는 고대 로마의 분수의 일부였던 로마시대의 청동상인 4M 높이의 피냐(Pigna-영어로는 pinecone)를 찾아볼 수 있다. 솔방울은 이탈리아에서는 통치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을 피냐의 정원(Cortile della Pigna)으로 부른다. 이 솔방울은 원래 판테온 근처에서 발견된 것이 베드로 성당의 현관에 있다가 1508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피냐(솔방울) 정원에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해 제작한 "천체 속의 천체(Sfera con Sfera-영어식 표현 Sphere Within Sphere)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지구가 환경 오염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더블린의 Trinity College, 뉴욕의 UN 본부, 워싱턴 D.C.의 the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미국 인디아나폴리스의 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에 샌프란시스코의 the de Young Museum,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Tehran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안타까운 지구를 살짝 가리면서 찍은 사진(뒷편으로 베드로 성당의 돔이 살짝 보임)과 로마의 상징인 솔방울 청동상밑에서의 사진을 올려본다.

 

 

   

 

 다시 피냐의 정원에서 건물로 들어갔다(사진의 왼쪽 편).  이 전시실은 키아라몬티 미술관(Chiaramonti museum) 이다. 키아몬라티는 1800년대초에 이곳을 세운 교황 피오 7세(Pius VII, 1800-1823))의 출가 전 성씨가 키아몬라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통로를 따라 가면서 찍은 통로 양옆의 전시물과 아폴로의 조각상 앞에서의 사진을 올려본다.

 

 

 

 

 

통로를 따라 가면 오른쪽으로 통해있는 전시실을 하나 볼 수 있는데 그 전시실은 라파엘 스턴(Raphael Stern)이 세운 새로운 부속 건물(신관)인 브라치오 누오보(Braccio Nuovo)이다. 이 전시실에는 '아우구스투스 조각상(The Prima Porta Augustus)'이 있으며, 특히, '나일강의 거상(Colossus of the Nile)'이 있는 곳이다. 강의 신인 나일의 거상은 원래 헬레니즘 작품을 고대 로마인들이 1세기경 제작한 것이다. 스핑크스와  악어를 통해 이작품이 나일강의 거상임을 알 수 있으며, 16명의 소년들은 나일강이 범람하여 그 지역을 비옥하게 만들 때의 나일강의 수위를 암시한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조각상과 아테네 여신상 , 그리고 나일강의 거상을 올려본다.

 

     

 

조각을 보고 윗쪽으로 올라가면 8각형의 벨베데레의 안뜰(The Cortile del Belvedere-영어식 표현 the Belvedere courtyard)을 볼 수 있다. 벨베데레는 원래 바타칸 궁전의 전신이었던 벨베데레 궁전(Palazzo Belvedere)의 이름이다. 이 궁전의 안뜰이 바로 벨베데레의 안뜰이다. 벨베데레의 안뜰은 이노센트 8세(Innocent VIII)가 건축을 시작했지만 진정한 건축은 율리오 2세의 부탁을 받아 1506년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 설계한 것이다. 이 안뜰은 전형적인 서유럽의 정원 형태로 정원이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참고로 브라만테도 이 안뜰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았다고 한다. 벨데베르 안뜰에서의 사진을 올려본다.

 

 

 

 

벨데베르 정원을 거쳐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피오-클레멘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조각품들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전시물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석관이 있는 그리스 십자형 전시실(Sala a Croce Greca), 몇몇 모자이크와 헤라클레스 청동상, 네로 황제의 욕조가 등이 있는 원형 전시실(Sala a Croce Greca), '잠자는 아리아드네(Ariadne sleeping)'와 같은 유명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 전시실(Galleria delle Statue), 많은 고대 흉상 들이 전시되어 있는 흉상 전시실(Galleria dei Busti), 고대 극장용 가면이 전시되어 있는 가면 진열실(Gabinetto delle Maschere), 아폴로 신과 아홉 명의 뮤즈 여신상들그리고 벨베데레의 토로스 등이 전시되어 있는 뮤즈 전시실(Sala delle Muse), 동물들의 조각상이 있는 동물 전시실(Sala degli Animali)이 있다. 그 수많은 조각들 중에 원형 전시실의 조각상과 바닥의 모자이크를 올려본다.

 

   

 

박물관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바티칸에도 테니스 코트가 보였다. 역시 신부님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운동은 해야 할 것이다. 테니스 코트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그냥 한번 찍어 보았다.

 

 

 

우리의 발걸음은 계속 옮겨져 긴 복도를 따라가면서 고대 촛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촛대 전시실(Galleria dei Candelabri)과 벽에 걸려있는 직물 공예인 태피스트리(tapestry)를 벽에 전시해놓은 태피스트리 전시실(Galleria degli Arazzi)를 지났다. 계속하여 만난 것은 이탈리아 등의 오래된 지도를  전시해놓은 지도 전시실(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이었다. 특히 지도 위에 쓰여진 글자들도 예술적이었다. 특히 맨끝에 있는 지도는 의미가 있는 지도이니 꼭 보기를 바란다. 또한 지도 전시실 아치형 천장의 아름다운 벽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탈리아의 장화의 모습이 드러난 맨끝 부분의 지도와 지도 위의 그림같은 글씨 사진을 올려본다.

 

   

 

지도실을 지나 라파엘로의 방(Stanza di Raffaello)으로 들어갔다. 원래 라파엘로의 방은 교황 율리오스 2세(Giulio II)가 서재를 장식하기 위해 라파엘로에게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다. 라파엘로의 방은 4개가 있다. 이들 라파엘로의 방을 연대기 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508~1511년 사이에 지어진 교황이 서류 결재를 하던 서명의 방(세냐투라의 방, Stanza della Segnatura-영어식 표기; Room of the Signatura), 1512~1514년에 지은 <엘리오도르의 추방  >에서 유래한 엘리오도르의 방(Stanza di Eliodoro-영어식 표기;Room of Heliodorus), 1514~1517년에 지은 보르고 마을의 화재를 표현한 그림이 있는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incendio del Borgo-영어식 표기;The Room of the Fire in the Borgo), 1517~1524년에 지은 콘스탄키누스황제의 전설적인 삶이 그려져 있는 콘스탄티노의 방(Sala di Costantino-영어식 표기;Hall of Constantine)이 있다. 이 방 중 나의 관심으 ㄹ끄는 곳은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영어식 표기;The School of Athens)> 그림이 있는 서명의 방이었다. 일단 서명의 방에 있는 아테네 학당 앞에서의 사진을 올려본다.

 

 

<아테네 학당>은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에도 나오는 표지 모델(?) 그림으로 1509~1510년에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54명인데 일종의 상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동시대 사람이 아닌 여러 철학자 들을 여기에 다 모아두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운데 계단에 철퍼덕 앉아 있는 사람은 디오게네스(Diogenes)이며, 디오게네스 뒷쪽에 붉은 색 토가를 걸친 이가 플라톤(Plato-모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그 오른쪽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이다. 왼쪽의 책상에 턱을 괘고 앉아 있는 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인 헤라클리투스(Heraclitus-모델은 미켈란젤로)이다. 플라톤의 왼쪽으로 쑥색의 옷을 입고 왼쪽으로 돌아서 있는 이가 소크라테스이며, 오른쪽 아래에 바닥에 무언가를 가리키며 열심히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빨간 옷을 입은 이는 유클리드(혹은 아르키메데스)이며, 그 뒷편에 등을 보이는 노란색 옷을 입은 이가 라파엘을 모델로 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영어명 Ptolemy 톨레미)이다. 수학 선생님이신 아내는 연신 기하학에 대하여 열심히 논하고 있는 수학자들의 모습에 눈이 계속 가고있다.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그를 뒤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보티우스(혹은 아낙시만더 혹은 엠페도클레스)의 모습을 그린 장면과 피타고라스가 쓴 내용을 클로즈 업하여 올려본다.

 

   

 

여기에 덧붙여 계속하여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클리드(or 아르키메데스)와 학생(아마도 브라만테)의 장면과 필기 내용도 역시 클로즈 업하여 올려본다.

 

   

 

이 방을 촬영한 동영상도 보너스로 올려본다.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 드디어 시스티나 예배당(Capella Sistina-영어표기;Sistine Chapel)이다. 바티칸 박물관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그린 흔히 <천지창조(Genesi-영어표기;Genesis)>로 알려진 그림과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 -영어표기;Last Judgment)>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의 관저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교황을 선출하는 행사인 콘클라베(Conclave)는가 열리는 장소이다. 참고로 라틴어인 콘클라베의 뜻은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라고 한다. 

교황 율리오스 2세(Giulio II)는 예배당 천장에 원래 12제자를 그릴 것을 제안하였지만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렸다고 한다. <천지창조>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9개로 나뉘어 담고 있는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33살때인 1508년에 착수하여 4면만에 완성한 천장 벽화이다.  <천지창조>의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면, 빛과 어둠의 분리(창세기 1장 1-5절), 별의 창조(창세기 1장 11-19절), 땅과 바다의 분리(창세기 1장 9-10절), 아담의 창조(창세기 1장 26-27절), 이브의 창조(창세기 2장 18-25절), 원죄(창세기 3장 1-13절, 22-24절), 노아의 희생(창세기 8장 15-20절), 노아의 방주(창세기 6장 5-8절, 20절), 노아의 만취(창세기 9장 20-27절)이다.

<최후의  심판>은 제단 뒷벽의 벽화로 미켈란젤로가 61세인 1536년에 시작하여 6년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390명 이상의 인물이 들어간 대작이다. 그림은 크게 나란히 놓인 띠레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윗부분에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예수가 수난당할 때의 십자가와 같은 도구들을 들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와 위엄 있는 심판자로서의 예수의 모습이 있다. 맨 아래쪽에는 왼쪽으로 종말 이후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오른쪽으로 영원한 벌을 선고받는 이들의 영혼을 나르는 배와 이들을 심판하는 지옥 그려졌다. 마로 그 위로는 심판의 나팔을 든 일곱 대천사들의 모습도 있다.

비록 화질은 좋지 않지만 천장 벽화의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자.

 

 

시스티나 에배당을 나오니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점심을 먹지 않았다 이미 거의 오후 2시가 되었는데....가이드 투어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개씩 돌아보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다. 여하튼 건물 밖으로 나오니 뒷쪽으로 산 피에트로 성당의 돔이 가까이 보였다. 그리고 출구쪽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통 위에서 아래로의 사진을 찍는데 나는 거꾸로 찍어 보았다. 결론은 역시 다른 사람처럼 위에서 찍어야 제대로 나온다는 사실....사진 두 장을 참고하시기를...

 

   

 

바티칸 박물관에서 나와 메트로 A선의 오타비아노 산 피에트로(OTTAVIANO SAN PIETRO) 역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당 사진과 음식 사진을 보너스로 올려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