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친구네 가족을 배웅하고 우리는 차를 몰아 유럽의 작지만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나라,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3국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인인 룩셈부르크대공국(the Grand Duchy of Luxembourg)을 찾았다. 룩셈부르크대공국이 정식 국가명이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냥 룩셈부르크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구 50만(2010년 현재)의 작은 나라인 이곳의 수도가 룩셈부르크(시티)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도의 인구는 약 1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는 차를 몰아 헌법 광장 근처의 Avenue Monterey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룩셈부르크의 여행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헌법광장(Place de la Constitution)으로 갔다. 이곳에서 우리의 눈을 가장 먼저 끄는 것은 역시 룩셈부르크 시를 대표하는 아돌프다리(Pont Adolphe)이다. 1902년에 프랑스 건축가 Paul Séjourné 가 설계하여 세워진 아돌프 다리의 긴 아치는 길이가 84.65m로 건축 당시 세계 최대의 석조 아치였다고 한다. 커다란 아치의 양쪽에 다시 작은 아치들을 배치해놓은 아름다운 모습인 아돌프 다리는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Ville Haute와 신시가지인 Gare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또 다른 다리로 1859년~1861년 세워진 Passerelle(gateway) 다리가 있다. 계곡 위 45m에 위치한 총 길이 290m, 24개의 아치가 있는 이 다리는 시내와 기차역을 이어주는 구름다리이다. 헌법 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 다리와 Passerelle 다리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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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광장에는 미니 기차(장남감 기차)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이 있다., 미니 기차를 뒷 부분에서 잡아 보았다. 아돌프 다리의 멋진 모습을 배경으로 우리도 칼칵 하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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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페트류스 계곡과 다리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려본다.
헌법 광장에서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아름광장(Place d'Armes)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Aldringen 길과 Philipphe 2세 길을 슬슬 어슬렁거리며 거리 풍경을 눈에 넣고 돌아다녔다. 깔끔한 거리와 그리 많지 않지만 적당한 수의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간단한 과일과 음료, 그리고 저녁에 밥해먹을 이태리 쌀(long grain)을 구입했던 Aldringen 길과 거리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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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아름광장은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의 아름광장은 이 지역 사람들이나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각종 페스티벌이 많다고 한다. 원래 아름광장은 수비대의 열병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광장 이름도 군사 용어인가 보다. 여하튼 지금은 지금은 돌로 만든 판석으로 포장되어 있고 광장 주변에는 서양보리수(lime tree)가 심어져 있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밴드스탠드(bandstand)가 자리잡고 있어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연주를 하고 관객들은 광장에 앉아 연주를 감상하면된다. 광장의 동쪽 끝에는 시티센터(The Cercle Municipal)가 자리잡고 있다. 1904년부터 1909년까지 신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발코니 위쪽의 프리즈(Frieze)에는 룩셈부르크시의 시 헌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밴드스탠드가 자리잡고 있는 아름광장과 시티센터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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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아름광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려본다.
아름광장을 지나 우리는 일단 페트류스(Petrusse)강이 흐르는 계곡 아래인 그룬트(Grund)로 내려가기로 했다. 깨나 정결해 보이는 호텔(Hotel De Ville)을 지나 아래쪽으로 가다보면 여성의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그것은 바로 샤롯 여공(女公, 1896-1985)의 동상이다. 샤롯 여공은 1919년~64년까지 룩셈브루크를 통치한 분으로 룩셈부르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걸이다. 비문에 쓰여진 글자가 Mir hun lechgaer(We love you)라고 한다. 또 아래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높은 첨탑의 건물을 볼 수 있었다. 헌법 광장 맞은 편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이다. 우리는 뒷편에서 카메라를 들이댄 셈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613년에 주춧돌이 세워진 로마 카톨릭 성당으로 이곳에서 현재의 대공인 잔 대공과 벨기에의 공주인 로세핀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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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룬트 쪽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그것을 타고 계곡쪽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마을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페트류스강을 따라 집들이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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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집들과 강가에서 올려다본 룩셈부르크 시티의 구 시가지의 풍경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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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아돌프 다리쪽으로 슬슬 걸어가 보니 절벽위에 세운 아직도 남아 있는 성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벽 아래의 절벽과 조화를 이룬 집이 한채 있었는데, 그 집 지붕이 절벽 바위의 곡선과 어우러져 있었다. 사진으로 확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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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돌려 그룬트 행정 구역 내에 있는 노이뮌스터수도원(Neumünster Abbey)쪽으로 강변을 따라 걸어갔다. 노이뮌스터스도원으로 가는 도중에 자그마한 자연사박물관 건물을 만났다. 1308년에 세워진 건물을 1674년에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작지만 그런대로 갖출 것을(?) 갖춘 자연사박물관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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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뮌스터수도원쪽으로 가기 전에 수도원 성당의 모습이 보였다.성당 건물과 성당 내부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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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쪽으로 가보니 페트류스, 강변에 자그마한 조각배가 묶여져 있고 작은 조형물이 서있었다. 아마도 강을 따라 이곳에 오던 수도사들이 타고 다닌 배가 아닐까 한다. 수도원쪽에서 위를 바라보니 보크 포대(Casemates du Bock)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이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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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노이뮌스터수도원은 단순한 수도원이 아닌 룩셈부르크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 센터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광장과 문화 센터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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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뮌스터수도원을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 보크 포대쪽으로 걸어갔다. 보크 포대는 원래 18세기에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절벽을 뚫고 설치한 포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3만 5천명의 사람들이 폭격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지하도와 저장실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한다. 보크 포대의 모습과 위에서 내려다본 노이뮌스터수도원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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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수도원쪽에서 바라본 보크 포대의 모습을 올려본다.
보크 포대를 올라가면 벤첼의 고리 모양 성벽(Wenzelsmauer)과 맞닿아 있다. 벤첼 성벽 걷기의 출발지점이다. 룩셈부르크는 1867년 영세 중립국이 되었는데 이 때 이미 이 성벽은 대부분이 파괴되어 있었다고 한다. 벤첼 성벽은 구 시가지를 빙 둘러 있던 성벽 유적이다. 벤첼의 성벽과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성벽 위의 방위표에서 동경은 있으나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쪽이 우리나라가 있는 방향이다. 벤철 성벽 위에서 아래의 알제트 강을 내려다보면서 한 장 남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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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동영상으로 올려본다.
성벽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그랑 뒤칼 궁전(Palais Grand Ducal)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에서 성 미카엘 성당(St. Michel)을 보았다. 이 성당은 룩셈부르크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건축물이라고 한다. 원래 이 자리는 서기 987년 룩셈부르크 백작을 위한 성채 예배소가 세워졌던 장소인데, 수 세기에 걸쳐 파손과 재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로마네스크·바로크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오늘날의 모습은 1688년까지 정립된 것이며, 이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2003~2004년 개조공사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 성다으이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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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카엘 성당을 지나 골목길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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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가다 보니 궁전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는 통로를 지나니 그랑 뒤칼 궁전이 나왔다. 스페인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현재는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국왕이 머무를 경우 국기가 게양된다고 한다. 다른 유럽의 궁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담담한 멋을 지닌 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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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을 따라 나오면 아름 광장과 연결된 기욤2세(William II) 광장이 나온다. 기욤 광장에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창시자인 기욤 기세의 기마동상이 서 있다. 기욤이라는 말은 윌리엄의 프랑스식 표기인 Guillaume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광장은 원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이 있던 곳인데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7년 프랑스 군인들이 점령해 수도원을 해산시켰다. 광장의 설립은 나폴레옹과 관련이 있다. 1804년 나폴레옹의 방문에 맞춰 현재의 광장을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1829년 벨기에 건축가 쥐스틴 레몽(Justin Remont)의 설계로 광장에 새로운 시청사 건설계획이 세워졌고 같은 해 수도원 건물이 해체되었으며 해체된 건물 재료는 시청사 건축에 사용되었다. 1838년 시청사 건설이 완공된 후 우선 시의회가 사용했으며 공식 준공식은 벨기에 혁명으로 인해 지연되다가 1844년 7월 15일에야 빌럼 2세에 의해 치러졌고 광장의 상징인 빌럼 2세를 닮은 기마상이 함께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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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시키 둘러보기를 마치고 차를 주차시켰던 Avenue Monterey의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다시 찾았다. 짧은 룩셈부르크에서의 일정을 뒤로 하고 다시 프랑스의 랭스로 향하였다. 프랑스로 향해 가던 도중에 프랑스의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의 나라답게 조각상의 모습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룩셈부르크 몬테레이 지하 주차장의 입구와 프랑스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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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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