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교육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된다. 이번 방문 중에 스톡홀름에 위치한 왕립공과대학과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스톡홀름 근교의 웁살라대학을 연구재단의 황박사님이 잘 주선하셔서 노벨에세이 수상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두 대학에서 모두 홍보관이 직접 우리를 안내해줘 그저 막 가는 관광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2009년 9월 스웨덴과 체결한 협정에 의해 우리나라 이공계 고등학생들을 선발하여 이곳 스웨덴 견학을 한국연구재단 주관하에 2010년 1월 경에 견학시켜준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그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것을 미리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먼저 방문한 왕립공과대학(KTH-Kungliga Tekniska högskolan,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은 1827년에 개교한 대학으로 이공계에서 스웨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이다. 학생수 약 17,000여명에 교직원 3000여명, 연간 예산이 2009년 현재 3억 유로(우리 돈 약 5400억원)에 달한다. 참고로 서울대학교의 자료를 보자(자료 출처 - 2008 서울대학교 통계 연보-http://www.snu.ac.kr/about/ab0501_view.jsp?idx=31). 전임교수 1751명, 일반직 422명, 국고(2500억), 기성회비(2200억), 발전기금(770억) 등 약 5500억이다. 이 예산에는 부속학교와 연구소 등 모든 예산이 들어 있는 것이고, 구고만으로 본다면 2500억 규모이다. 이 중 공과대학(110억), 자연과학대학(52억), 농업생명과학대학(31억) 등 이공계를 전부합하면 193억정도이다. 왕립공과대학이 이공계만을 가진 대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정도면 게임은 끝이다. 그것도 스웨덴은 학생들에게 학비도 아직까지는 안 받고 있는데...(최근 유럽 각국이 학비를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해보면...)서울대학교가 아직 세계의 대학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예산 잡아먹는 대학일지 모르지만 세계적 규모로 보면 피라미 수준이다. 피라미가 그래도 험난한 세상에서 버티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인가(?). 물론 비교에 몇 가지 미스(대학원 예산 등의 문제 등)는 있을 지 몰라도 좌우간 엄청난 수준 차이이다. 왕립공과대학은 스웨덴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지역에서 학생들이 오고 있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이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시기를...(http://www.kth.se/?l=en_UK). 학교 사진 두 장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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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나라 KAIST 학생들이 교류 차원에서 이곳에 연간 5-10명 정도 교환학생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학부 과정에 정상적으로 입학하려면 영어와 스웨덴 어가 능통해야 한다고 한다. 스웨덴 어가 아직 낯설기에 혹시 대학원 과정으로 진학하거나 포닥으로 오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참고로 대학원 과정의 개설 프로그램을 보면, Architecture, Biotechnology, The Built Environment, Cjemistry and Chemical Engineering, Electrical Engineering, Industrial Management, Informayion Technology, Material Science and Engineering, Mathematics, Mechanical Engineering, Physics, Technology and Heath 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톨스토이-.
왕립공과대학과 또 떼어놓을 수 없는 대학이 IT 대학이다. IT 대학은 스웨덴왕립공과대학(KTH)과 스톡홀름대학이 연합해 만든 독특한 대학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묵었던 민박집이 있는 시스타(Kista) 지역에 IT대학이 있다. 전자공학 통신시스템 등 4개 학과로 구성된 IT대학은 시스타에 입주해 있는 엑릭슨을 위시한 기업들의 중요한 인력공급 및 연구지원 채널이기도 하다. 많은 교수들이 기업들이 낸 연구 기금으로 채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의 3분의2인 200만㎡ 규모의 시스타는 미국 실리콘벨리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IT 클러스트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고(http://www.kth.se/ict/campusitu/), 내가 스웨덴에 체류하는 아침마다 많은 시스타 인력들과 지하철역에서 마주쳤다. 상당히 역동적이었던 사람들의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과학도시 시스타를 주도하는 에릭슨 회사와 다닥다닥 입주해있는 업체들이 들어 있는 빌딩 사진을 올려본다(첫번째 이야기의 사진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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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방문의 개인적인 가장 큰(?) 목적은 린네로 유명한 웁살라 대학을 가보는 것이었다. 웁살라에 남아있는 린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이제 웁살라(UPPSALA)대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웁살라는 스톡홀름의 북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일종의 대학 도시이며 웁살라주의 주도이다. 웁살라 대학은 북유럽 최초로 1477년 대개의 대학의 기원이 그렇듯이 신학, 법학,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창립된 대학으로 생물 선생인 나에게는 칼 폰 린네의 대학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1477년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성종 8년때로 팔도지리지가 완성된 해로 비교해보면 될 것이다. 또한 근대적 의미의 유럽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 살레르노에 있는 볼로냐대학이 1088년에 세워졌구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웁살라 대학을 바라보기 바란다. 현재 웁살라대학에는 약 40,000여명의 학부생과 2000여명의 박사과정생, 그리고 4000여명의 교수와 연구진, 연간 예산 mSEK 4,300백만 크로나(우리나라 돈으로 약 7500억원). 세계 100위 이내는 항상 드는 대학, 전통이 있는 거대 대학이다. 웁살라 대학을 방문햇을 때 과학연구재단의 황박사님께서 주선하셔서 웁살라대학 홍보관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웁살라 대학 본관을 배경으로 방문한 학생단과 함께 찍은 사진과 홍보관의 열성적인 설명 장면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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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에서 가장 눈에 뜨인것은 웁살라 대성당이다. 웁살라 성당은 1260년에 짓기 시작하여 1435년 완공되었으며, 현재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한다. 중세시대부터 18세기까지 이 곳에서 스웨덴 왕좌 대관식이 이루어졌으며, 스웨덴 왕족의 묘들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나에게 더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린네가 여기 묻혀있기 때문이다. 일단 웁살라 대성당의 사진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뾰족탑이 보이는 것을 쳐다본 것으로 두 장 올려본다. 특히 오른쪽 사진은 대성당 앞에 웁살라대학 박물관이 같이 보인다. 이들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눈치채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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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대학(UPPSALA UNIVERSITET)에도 볼거리가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웁살라대학 홍보관의 안내로 웁살라 대성당과 웁살라대학 박물관인 구스타비아넘 박물관(Museum Gustavianum), 그리고 웁살라 메인 빌딩을 둘렂보았다. 웁살라 대성당은 높이와 길이가 같은 건물로 앞에서 잠깐 소개했듯이 18세기 까지는 이곳에서 대관식이 열렸고, 왕족들의 무덤과, 특히 칼 폰 린네가 안장된 성당이다. 린네의 안장된 표지석과 성당 내부의 동영상을 올려본다. 조명이 안좋아 보기 어려워도 참고 보시기를...
성당을 나와 웁살라대학 박물관을 향했다. 웁살라대학 박물관인 Gustavianum 박물관은 현재 웁살라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박물관 내부의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글로 대신해본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홈페이지에 접속하시가를...(http://www.gustavianum.uu.se). 우선 박물관 사진을 한번 올려보겠다.
이 건물은 바사 박물관에서도 한번 들어본 이름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2세(Gustav 2 Adolf)의 이름을 딴 건물이다. 왜냐면 구스타프 국왕이 웁살라 대학을 세우기 위한 땅과 자금을 지원을 했기때문이다. 이 건물은 네델란드 건축가인 카스파르 판텐(Caspar Panten)이 설계한 것으로 1625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1625년의 우리나라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즉위한 3년째 되는 해이다. 박물관으로서 이 건물은 1997년 개관하였으며, 내부 사진 촬영을 못하니 건물 상세도를 일단 올려본다.
큰 강의실과 26개의 학생용 방, 부엌, 휴게실, 지하 와인 저장고 등이 있다. 특히 사진의 돔 부분 아래의 3층에는 해부용 극장(The Anatomical Theatre)이 있다. 극장이 뜻하는 의미는 당시에 인체 해부를 입장료를 받고 그 곳에서 행했다고 한다. 사실 이 돔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재다능한 박식가인 Olof Rudbeck(해바라기 닮은 루드베키아-원추천인국-식물명이 이 분의 이름을 땃따고 한다)이 네델란드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Leiden 대학의 해부극장에 영감을 받아 1662년 지붕을 돔형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모두 200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으며, 의대생과 돈을 낸 청중들 앞에서 사형당한 범죄자 등의 시신을 1766년까지 해부했다고 한다. 4층에는 스웨덴의 유물이 있고, 1층에는 그리스 유물과 이집트의 미이라가 있다.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끄는 방인 2층. 2층에는 Augsburg의 예술품 상자(Art Cabinet)와 셀시우스의 온도계(Celcius themometer), 그리고 린네를 만날 수 있다. 해부극장에서 함께 방문한 노벨에세이 수상 고교생과 관계자들과 함께 특별히 홍보관의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그 당시의 상황을 약간 따라 했음)과 셀시우스의 온도계를 스캔하여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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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sburg의 Art Cabinet은 세상의 온갖 진기한 미니어처들을 담고 있는 보물 상자라고나 할까? 163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별로 크지 않은 상자 속에 무려 1000여점의 미니어처들이 담겨져 있다. 셀시우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매일의 일기 예보에 나오는 오늘의 온도 ◯◯ ℃의 ℃의 주인공이 바로 셀시우스이다. 엔더스 셀시우스(Anders Celcius, 1701-1744)는 물의 어는 점을 0 ℃, 끓는 점을 100 ℃로 온도 체계를 고안한 사람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바로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이다. 린네는 14명의 제자를 세계 각지로 파견하고 채집을 하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냈다. 당시에 일본에까지 다녀간 제자가 있다. 그들 중 제일 나이 어린 학생이 17살이었다고 한다. 린네가 채집하였던 채집품들과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 여러 유물들이 있다. 린네는 물론 의사 생활로 상당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진정한 식물학자가 되기를 원했고(?) 의사로서 보다는 식물학자로서 지금까지 명성을 날리고 있다. 린네의 주요 업적은 잘 아시다시피 최초로 생물의 종명과 속명을 정의하는 원리를 만들고 이에 따라 생물의 이름을 붙이는 명명법의 창시자이다. 바로 인간을 Homo sapiens Linne가 되게 한 장본인이다. 명명법은 라틴어를 사용하였고 자기 자신의 이름도 Carolus Linnaeus라고 라틴어 식으로 이름 붙인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린네의 많은 채집품들은 영국의 스미스경(James Edward Smith ,1759-1828)이 1783년 사들인 이후 정작 스웨덴이 아닌 영국에 더 많이 있다. 특히 1788에 런던에서 발족한 린네학회가 런던 시내 한복판인 Piccadilly의 Burlington House에 있으며, 이곳의 미팅 룸에서 다윈과 월리스의 자연선택에 관한 페이퍼가 발표되었다. 자세한 것은 홈페이에서...(http://www.linnean.org/). 스웨덴에서는 린네의 자료를 건네받고 싶어하지만 영국이 줄리가 없겠지요..... 린네학회 홈페이지 사진을 올린다(매년 8월말부터 9월경에 열리는 OPEN HOUSE 행사에 꼭 들려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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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잘 소개받고 대학본관으로 이동하였다. 마침 웁살라 대학의 고위 관계자께서 친히 우리 일행을 맞이해주셔서 웁살라 대학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영접 받는 곳에서 영접을 받는 기회를 가졌다. 대학 본부 건물은 1887년에 세워진 것으로 각종 강연이나 컨퍼런스, 졸업식, 회의 등이 열린다고 한다. 학생들을 친하 영접해준 웁살라 대학 관계자와 학생들의 기념 사진과 가끔 회의시 국왕이 앉았다고 하는 의자에 특별히 허가를 맡고 한번 치기어리게 앉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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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건물의 여러 방 중 특별히 소개할 만한 것은 바로 대강당이다. 1,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의 내부의 동영상을 올려본다. 다음 날의 음악회를 위해 세팅되어 있는 무대에서 첼로를 연습하는 연주자에게는 미안했지만....
웁살라 대학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8명이다. 이들 8명은 따로 대학 본부에 사진과 주요 업적을 설명한 방에 잘 전시되어 있다. 19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Allvar Gullstrand(1862-1930, 눈에서의 광학적 이미지와 빛의 굴절에 관한 연구), 191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Robert Bárány(1876-1936,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빈대학에서 의학 공부 후 독일 유학, 빈대학에서 전정기관의 생리와 병리 연구. 노벨상 수상후 노벨상 관련 모국에서의 비난을 받아 1917년 웁살라대학 교수로 옮김), 19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Manne Siegbahn(1886-1978, X선 분광학과 진단 장치의 개발 연구), 1926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Theodor Svedberg(1884-1971, 초원심분리에 의한 콜로이드 연구;흔히 우리가 생물 공부할 때 침강 계수 70S니 하는 표현을 쓰는데 이 'S'가 스베드베리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기 시작한 단위이다. 그는 Theodor라는 이름보다는 The라고만 사용하여 많은 문건에 The Svedgerg로 되어 있다). 193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Nathan Söderblom (1866-1931, 스웨덴 루터교의 주교로 교회 연합으로 평화를 추구), 194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Arne Tiselius(1902-1971, 전기 영동법을 사용하여 혈청 내의 4종류의 다른 단백질인 알부민, α, β, γ 글로빈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힘), 196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Dag Hammarskjöld(1905-1961, 제2대 UN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콩고 독립 후 콩고공화국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던 당시 비행기 사고로 순직, 사망 후 노벨평화상 추서). 198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Kai Siegbahn(1918- , 물질과 전자기 복사의 상호 작용을 전자분광학으로 분석 연구). Kai Siegbahn은 192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Manne Siegbahn이 아버지로 부자가 모두 노벨상 수상자이다. 모녀 수상자인 퀴리와 또 다른 부자 수상자인 영국의 톰슨 부자(톰슨의 원자 모형 생각 나시죠)가 2대째 노벨상을 받은 대표적 가문이다. 약간 에피소드인데 Siegbahn 집안의 3대째인 Hans Siegbahn도 웁살라 대학의 물리학 및 재료과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관계로 많은 심적 부담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웁살라 대학의 노벨 수상자 전시 방에있는 Siegbahn 부자의 사진 중 더 젊은 흑백 사진이 아버지이고 연세 드신 분이 아들이므로 혹시 이 방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헷갈리지 마시기를....특히 내가 생물 선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들 수상자 중 나에게 사실 제일 유명한 사람은 스베드베리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생물학책이나 화학책 곳곳에 'S'라는 침강 계수가 등장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런 맥락으로 보았을 때 스베드베리가 노벨상 수상자 자료에 다른 수상자는 대체로 1쪽, 두 명만 두쪽인것에 비해서 3쪽에 걸쳐 등장하고 있는 것은(설명 1쪽, 독사진 1쪽, 그리고 또 다른 실험 장치에서 동료와 찍은 사진 1쪽 등) 8명 중 교과서에 가장 많이 등장해서가 아닐까(???)- 웁살라 대학에서 제공한 자료집 표지를 올려본다.
너무나 짧은 시간만을 웁살라에서 보냈기에 사실 너무나 부족하게 둘러보고 왔다. 웁살라 대학 안내 책자에만 소개된 곳이 15군데 인데 그 중 극히 일부만 보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홈페이지라도 뒤져보시기를(http://www.uu.se)....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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