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주변 돌아다닌 이야기

리즈 성(Leeds Castle) 다녀오기

과천가이 2010. 4. 30. 02:55

잉글랜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리즈 성, 6명의 왕비(Eleanor of Castile; Margaret of France; Isabella of France, Joan of Navarre; Anne of Bohemia and Catherine de Valois.)가 살았던 귀부인의 성, 왕의 사후 남겨진 왕비들이 거처하던곳, 헨리 8세가 프랑스에 꿀리지 않으려고 막대한 거금을 들여 꾸민 성...리즈성을 2010년 4월 13일 다녀왔다. 도버로 가는 길목의 Kent주, Maidstone(직역하면 하녀의 돌^^^?) 타운에 있는 리즈성은 오래된 성으로서 박물관의 기능 뿐만 아니라, 컨퍼런스, 결혼, 소풍, 그리고 심지어는 9홀짜리 골프까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리즈 성은 원래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점령후 여러 곳을 요새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천 개의 요새 중의 하나였다. 그 이후 목조 건물이었던 이 성을 1119년에 노르만의 소유자였던 Robert de Crevecoeur 가 석조 건물로 재건축하였다. 일단 호수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리즈 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올려본다(왼쪽이 앞면, 오른쪽이 뒷면). 참고로 이 리즈성은 요크셔주의 리즈 시티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주의하시기를....

 

   

 

계속하여 리즈성의 역사를 좀더 공부해보도록 하자. 

1278년 에드워드 1세(Edward I, 1272~1307년 재위)와 그의 왕비 카스티야의 엘리나(Eleanor of Castile)에 의해 왕궁이 되었다. 에드워드 1세하면 체어링 크로스(Charing Cross)를 함께 떠올려야 한다. 체어링 크로스는 잘 아시다시피 트라팔가 광장 인근에 있는 철도와 지하철 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체어링 크로스라는 용어의 유래가 에드워드 1세와 관련이 있다. 에드워드 1세가 평생 사랑한 왕비 엘리너가 1290년에 죽자 리즈 성에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까지 관을 운구하면서 12개의 커다란 돌십자가를 만들어 그 관이 머물렀던 곳에 표지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런던의 체어링 크로스이다. 이후 영국에 흑사병이 대유행할 당시(1381년)의 왕이었던 리처드 2세(Richard II, 1377~1399년 재위)의 첫번째 부인인 보헤미아의 앤이 1381년 겨울 왕과 결혼하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이후 많은 이야기 거리를 선사하고 있는 헨리 8세(Henry VIII, 1509~1547년 재위)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왕비를 위해 그 성을 개조하였고,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도 한다. 이후 왕당파와 의화파가 한 판 붙은 영국 시민 전쟁((1641–1651) 중 당시의 성주가 의회파에 가담하고 있어 그 여파로 이 성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물론 승리는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에게로 돌아갔고, 그 와중에 1649년 찰스 1세가 처형되었다. 이 성의 마지막 소유주는 퀸보로우 남작(Baron Queenborough)인 Almeric Paget의 딸인 영국계 미국인인 베일리 부인(Baillie)으로, 그녀는 1926년 이 성을 사들였으며 1974년 그녀의 사망 후 이 성은 리즈성 재단이라는 이름의 Charitable Trust가 되어 1976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 성에서 열린 대표적인 행사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위한 준비 회담으로 1978년 7월 17일 이집트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과 이스라엘 외무 장관인 다얀(Moshe Dayan )과의 회합이 있었으며, 1999년 9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 경(Sir Elton John )의 야외 공연을 꼽을 수 있다.

보너스로 벚쪽 속의 리즈성 사진을 올려본다.

 

   

 

 우리가 사는 런던 집에서 약 50마일(약 80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차로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가는 도중에 M20 고속도로 변의 휴게소에서 잠깐 차를 마시고 리즈성으로 갔다.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기차는 빅토리아 역에서 south eastern 기차를 타고 조용한 시골역(?)인 Bearsted역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Spot Hire로 셔틀 버스를 타면 된다. 대체로 기차 시간에 맞춰져 있으므로 기차에서 내린 후 바로 리즈성까지올 수 있다. 참고로 기차는 1시간에 두번 이곳을 지난다. 고속도로 변의 휴게소와 베어스테드역의 사진을 올려본다.

 

   

 

 리즈성의 입장료는 꽤나 비싼 편이다. 하지만 한 번 끊으면 1년 동안 다시 갈 수 있는 년간 회원권의 개념이다. 그렇게 따지면 별로 비싸지 않은 셈이다. 리즈성의 입장료 등 기본 저긴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좋을 듯(http://www.leeds-castle.com) ....리즈성 입구의 오른쪽 편 숲에는 일종의 극기 훈련장(?) 시설 비슷한 나무타기, 장애물 건너기 등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며, 이 훈련의 상징인 원숭이가 조형물로 서 있다. 리즈성 입구와 입구 밖 극기훈련장이 있는 곳의 건물을 올려본다.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슬슬 걸어가면서 리즈성을 둘러싼 약 200만 평방미터(㎡)-약 60만평-규모의 공원을 즐기시는 것이 좋으리라. 물론 몸이 도저히 따라주지 않으면 리즈성 앞쪽까지 운행하는 탐방차를 이용해도 될 것이다. 좌우간 입구에서 슬슬 걸어들어가면 조그마한 개울과 연못이 있으며, 그곳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을 것이다. 잔디 위에는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는 공작새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잘 달래면(?) 수컷 공작의 꼬리를 편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연못과 공작의 모습을 올려본다.

 

   

 

물론 리즈성 공원 곳곳에서 백조와 흑조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백조와 흑조의 흑백의 조화를 올려본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벌써 점심 시간이 다 되었다. 점심은 도시락을 지참해 갔는데 그냥 여기저기 잔디밭에 흩어져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새 풍기는 김치도 있었다. 점심을 먹은 리즈성 입구 근처의 잔디밭을 올려본다. 여기서 엘튼 존이 야외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제 슬슬 발걸음을 옮겨 리즈성 내부를 들어가보았다. 성의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리즈성 외벽 망루인 barbican을 보게 되는데 이 바비칸은 13세기에 에드워드 1세때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 다리가 들려지지 않지만 리즈성 주변의 연못을 파서 성을 물로 둘러싼 해자와 그리고 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도개교(drawbridge)를 건너야 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외벽 망루와 도개교의 사진을 올려본다.

 

   

 

성문을 통과하면서 옛날에 있었음직한 내리닫이 쇠창살문(Portcullis)과 성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들이 사용하던 곳은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화장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안으로 진입하는 도개교가 있는 성문의 집의 모습을 측면에서 찍은 것과 성문을 통과한 후 안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본다.

 

   

 

성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성의 입구이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Maiden's Tower이다. 성의 입구이지만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는 메이든의 탑 뒷쪽의 호숫가를 끼고 뒤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며, 탐방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이 성의 입구이다. 메이든 탑은 튜더 왕조시대의 건축물로 성에서 먹을 빵과 술을 빚는 곳이었다고 한다. 베일리 부인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했으며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베일리 부인의 딸과 그 가족이 이곳에 2003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성 입구에서 찍은 사진과 호숫가쪽에서 찍은 메이든 탑의 뒷면 사진을 올려본다.

 

   

 

리즈성은 한꺼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세월을 타면서 증개축이 반복되었다. 위의 사진의 성의 입구 부분이 가장 나중에 새롭게 개축되어어졌고, 맨 첫 사진의 왼쪽 부분이 13세기에 만들어졌고, 시계탑(기가 걸려있는)이 15세기에 그리고 성 입구 부분의 뉴 캐슬이 1822년에 원래의 성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성의 뒷쪽의 탐방로(일단 뉴 캐슬쪽으로 들어감)와 성이 세워지고 증 개축이된 안내도의 사진을 올려본다.

 

   

 

탐방로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지하 저장고이다. 성이 포위되어도 오랫동안 버티려면 먹을 것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이 제대로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 지하저장고는 이 성에서 가장 오래된 시설물로 12세기초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린 고기, 소금에 저린 고기, 초만드는데 핑ㄹ요한 왁스, 과일, 밀짚 등이 보관되는 지하 저장고, 지금은 컨퍼런스나, 연회 등에 사용할 와인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하저장고를 지나 위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본격적으로 방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하저장고의 와인통과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전시해놓은 기사 갑옷을 살짝 올려본다.

 

   

 

계단을 올라가 가장 먼저 만나는 방이 Heraldry Room이다. 이 방은 이른바 뉴 캐슬이라고 불리우는 1822년에 개축한 성의 Great Hall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1927년 베일리 부인이 도서관으로 바꾸었고, 1938년에 방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 하인들의 홀의 사용했다고 한다. 벽면에는 17세기 소유주인 Culpeper 경의 가족들의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Culpeper는  찰스 2세(1660~1685 재위)에 의해 승인 받았던 미국의 버지니아 주의 소유주로 미국 독립 전까지 버지니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이 방을 나오면 복도에는 창과 칼 등이 전시되어 있다. Heraldry Room과 복도의 사진을 올려본다.

 

   

 

복도를 따라가면 여왕의 침실을 만나게 된다. 특이한 것은 큰 침대 옆에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간이 침대도 따로 있다. 궁금한 것은 침대의 베게가 왜 이렇게 많을까이다. 머리에, 다리 사이에, 안고 자는 용도.... 그래도 내머리로는 3개 밖에 사용처가 생각나지 않는다. 본 침대와 간이 침대의 사진을 올려본다.

 

   

 

통로를 따라 가면 여왕의 욕실과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물 받는 통이 바닥에 놓여 있고, 커튼에 가려진 욕조가 놓여 있어 방금 전까지도 사용하던 욕실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옆으로는 여왕의 갤러리가 있어 몇몇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왕의 욕실과 여왕의 갤러리 사진을 올려본다.

 

   

 

 이 방을 나오면 이 성에서 가장 큰 방인 헨리 8세의 연회실에 들어가게 된다. 벽난로 죄측과 우측에 있는 그림은 헨리 8세가 프랑스왕 프랑스와 1세를 만나러 가는 함대를 그려놓은 것이다. 1520년 5월 21일 일요일 3997명을 대동하고 그리니치 궁을 출발한 헨리 8세는 다음날 리즈성에 도착하였고, 그의 왕비 아라곤의 캐더린도 1175명을 대동하고 리즈성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이 장면을 그려놓은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도버로 출발했다고 한다.  연회실은 1927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식사후에 칵테일을 마신다거나 담소를 즐기는 용으로 베일리 부인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옆으로는 예배당(Chapel)이 있다. 성 안에서 왕을 비롯한 성내 잘 나가는 거주자들이 예배를 보던 장소이다. 헨리 8세의 연회실과 예배당의 제단의 모습을 올려본다.

 

   

 

예배당을 나오면 나선형 계단을 만나게 된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윗층의 베일리 부인의 개인 침실이나 이 성의 오래된 부분인 D자형의 탑 형태의 성인 글로리테(gloriette)에 다달을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은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지만 사실 1927년 Rateau가 설계할 때 이렇게 보이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계단의 모습과 계단을 올라갔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조형물을 올려본다.

 

   

 

계단을 올라가 윗층으로 가면 역시 복도를 따라 방들이 쭉 배열되어 있다. 복도를 따라가면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더린의 사적인 공간이 방이 나온다. 이 방을 베일리 부인이 개조하여 욕실을 인접하게 배치하여 손님들을 묶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손님들의 방명록의 명단에는 찰리 채플린도 있다고 한다. 또한 리즈성에서 있었던 캠프 데이비드 협상의 사전 회담이나 2004년의 토니 블레어 수상과 각료들이 북아일랜드 평화정착을 위한 심도있는 논의등이 진행된 세미나실을 볼 수 있다. 이 두방의 사진을 올려본다.

 

   

 

계속 가면 베일리 부인의 사적인 공간이 나온다. 베일리 부인의 이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베일리 부인은 나중에 Queenborough 경이 된 Almeric Paget와 그의 미국인 첫번째 부인인 Pauline Whitney 사이에서 1899년 9월 24일 뉴욕에서 출생한 첫째딸로 결혼 전의 이름은 Olive Cecilia Paget이었다. 그녀는 20살 때인 1919년 Charles Winn과 첫번째 결혼을 하고 1925년 이혼을 한다. 베일리 부인은 1925년 Wilson Filmer와 두번째 결혼을 하게되는데, 두번째 남편의 집안이 리즈 성 근처에 있는 East Sutton Park을 소유하고 있어 이것이 인연이 되어 리즈성을 1926년 구입하게 된다.  1931년 두번째 남편과 이혼한 후 바로 그해에 세번째 남편인 Adrian Baillie경과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은 얼마나 갔을까? 놀랍게도 1944년에 이혼했으니 무려 13년이나(?) 결혼 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올리브 세실리아 파젯은 베일리부인으로 영원히 남게되었다. 이 정도의 결혼 경력이면 대단하지 않을까? 여하튼 베일리 부인의 드레싱 룸과 목욕실을 구경할 수 있다. 루이 16세 풍으로 디자인한 이들 방은 화면에 제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정갈하고 멋있었다. 특히 리즈성의 상징인 흑조가 새겨진 타월이 욕실에 걸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는 베일리 부인의 침실이 나온다. 튜더 왕조 시절에 글로리테에 있는 왕족들의 방이었던 것을 베일리 부인이 침실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베일리 부인의 침실은 유명한 프랑스의 실내디자이너인 부뎅(Stéphane Boudin)의 작품이다. 옷방과 욕실의 사진과 침실의 사진을 올려본다.

 

   

 

베일리 부인의 침실 옆으로는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더린 욍비의 침실이었던 것을 베일리 부인의 세번째 남편인 아드리안 베일리 경의 침실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프랑스의 실내디자이너 부뎅이 다시 디자인하여 1960년대에 완성하였으며, 그 이후 베일리 부인의 거실(sitting room)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방을 끝으로 D자형 탑형의 건물인 글로리테를 나와 다시 뉴 캐슬로 돌아왔다. 글로리테와 뉴 캐슬을 연결하는 다리 통로(Bridge Corridor)의 오늘날의 모습은 19세기에 수리된 것이라고 한다. 아라곤의 캐더린 왕비의 침실과 다리 통로의 모습을 올려본다.

 

   

 

뉴 캐슬 지역으로 다시 넘어와서 만나게 되는 돌계단은 1822년도에 William Baskett라는 사람이 당시의 소유주인 Fiennes Wykeham Martin을 위하여 디자인하여 지어진 것이다. 20세기 초에 Fiennes의 손자가 투자를 잘 하여 켄트 주에 가장 넓은 부동산을 소유한 집안이 되었으며, 1926년 이 집을 베일리 부인에게 넘기게 된다. 이 집이 배일리 부인에게 넘어간 것은 1920년대 영국 시골의 쇠퇴의 여파라고 한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고용인들이 전사함으로써 성을 유지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것을 베일리 부인이 구입한 것이다. 여하튼 이 돌계단을 내려오면 전 주인과 관련된 것들을 볼 수 있다. 계단을 내려와 첫번째 만나는 것이 Yellow Drawing Room(노란색 거실)이다. 이 방은 1822년부터 1926년까지 Wykeham Martin의 서재(library)였다. 1927년 Rateau가 오찬룸(luncheon room)으로 다시 디자인하였으며, 1936년 루마니아의 퀸 여왕을 초대하여 이곳에서 베일리 부인이 오찬을 했다고 한다. 1938년 부뎅이 다시 재 디자인하여 거실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돌계단과 거실의 사진을 올려본다.

 

   

 

그 옆으로 가면  도르프 홀 거실(Thorpe Hall Drawing Room)이 나온다. 도르프 홀이라는 명칭은 1653년에 세워진 잉글랜드 동부의 피터보로우(Peterborough)에 있던 드로프 홀의 응접실에서 가져온 소나무 판넬이 리즈성의 이 방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교하게 조각된 소나무 판넬의 그윽함을 이방에서 느낄 수 있다. 1927년에 이곳으로 소나무 판넬을 가져았을 때의 색은 녹색이었다고 하는데 이 색은 모두 벗겨졌고 판넬의 조각들은 다시 재조립되었다고 한다. 이 소나무 판넬을 위해 천장과 창문을 낮추었다고 한다. 특히 이 방에는 중국 글자가 적혀있는 조형물이 있으며, 베일리 부인이 구입한 17세기의 중국 도자기 등을 볼 수 있다. 한쪽 벽에 있는 Lumley Horseman(럼리의 기수)이라는 영국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원래 이 조각상은 잉글랜드 북쪽의 더럼(Durham)의 Lumley Castle의 Great Hall에 있던 것이라고 하며, 제7대 성주 Lumley(1533-1609)의 후원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도르프 홀 거실과 기수 조각상의사진을 올려본다.

 

   

 

이 방 옆으로는 서재(Library)가 나온다. 1822년부터 이 방은 이전 소유주인 마틴집안에서는 식당방(Dining Room)으로 사용했던 것을 베일리 부인이 사드린 후 베이리 부인이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딸 Pauline과 Susan의 교육을 위한 방(School Room)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들의 교육은 프랑스 전직 관료였던 Southiere 부인이 맡았다고 한다. 1938년에 이 방은 도서관으로 바뀌었으며 약 3000권의 장서가 있고, 가장 오래된 책은 1638년에 발간된 필립 시드니 경(Sir Philip Sydny)의 아카디아(Arcadia)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이 성은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그 당시 이 방은 병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서재 옆에는 1822년부터 사용했던 마틴가의 주 식당방(main dining room)이 있다. 이 방은 1927년 하인의 홀과 하녀의 홀로 나뉘었다가, 다시 1938년 부뎅이 그 구분을 없에고 새롭게 식당방으로 디자인하여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네 벽면에는 18세기에 만든 색칠된 나무 판넬이 있으며 식탁은 1830년대에 제작된 영국제 마호가니로 30명이 한번에 앉을 수 있다고 한다. 벽면에는 베이리 부인이 수집한 중국제 도자기들이 걸려있다. 서재와 식당방의 모습을 올려본다.

 

   

 

리즈성 내부 관람의 대 장정이 끝났다. 서재를 통해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다른 성에 비해 이야기 거리가 많은 것은 최근까지 계속 사용하였고, 사진 촬영도 허가 되었기 때문이다. 리즈성의 볼거리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의 뒷편에 있는 컬퍼퍼 정원(the Culpeper Garden)은 원래 성의 식재료를 키우던 곳이 있다. 컬퍼퍼 정원은 17세기에 리즈 성을 소유 컬퍼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베일리 부인은 이것을 꽃을 심는 정원으로 바꾸었고, 1980년에 정원 디자이너 러셀 페이지(Russell Page)가 전형적인 영국식 정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컬페퍼 정원을 지나면 100종류 이상의 새를 키우는 새장이 나온다. 베일리 부인은 일생 동안 특이한 새들을 모으고 사육하였다. 특이한 새장 안의 각종 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름대로의 어린이를 위한 교육 시설로 교육용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컬페퍼 정원과 새 사육장을 올려본다.

 

   

 

새장을 나가면 낮은 언덕배기 잔디밭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새들의 쇼나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수 있는 놀이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번 도전해볼만한 것이 미로 찾기(maze)이다. 나무들로 이루어진 미로는 난이도가 좀 높은 편으로 최종적으로 중앙ㅇ에 도착하면 성공하게 된다. 미로를 찾은 후 나가는 통로는 중앙의 지하 통로로 나가게 되는데, 이곳은 동굴로 만들어 놓았다. 미로찾기는 2400그루의 주목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1988년 개장한 이루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하 동굴은 작은 조가비로 장식한 동굴(grotto)를 통해 문명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연출해놓았다. 작은 동굴 안에는 조개와 광물 숲을 만든 무섭게 생긴 신화 속의 야수를 만나게 된다. 미로찾기와 동굴 속의 신화 속의 야수를 올려본다.

 

   

 

리즈성은 2002년도 최고로 아름다운 성으로 뽑힌 곳이다. 하루 소풍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좋은 장소이다.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며 리즈성 다녀온 이야기를 마친다.